일본에서 가장 유명하고 탈옥 불가능한 감옥: 홋카이도 아바시리 감옥 박물관

아바시리 감옥 박물관은 한때 일본에서 가장 유명했던 감옥으로 일본의 탈옥왕 요시에 시라토리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가장 흉악한 범죄자들을 수용했던 곳입니다. 오늘날에는 감옥의 역사, 특히 홋카이도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역사를 소개하는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홋카이도 최북단 해안선에 왜 감옥이 지어졌는지, 한때 그곳에 수용되었던 죄수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등, 이곳의 역사적 배경과 함께 기사를 통해 자세히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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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불가능했던 메이지 시대 초기(1868~1912)

아바시리 교도소의 역사는 150년 전 일본의 메이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일본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으로 일어난 여러 차례의 반란으로 정치범 수가 증가했습니다. 메이지 시대 이전에는 흉악한 살인자들을 모두 사형을 집행했지만, 참수형은 많은 서방 국가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메이지 15년(1882)에 이르러 사형제가 폐지되었습니다.

사형제 폐지는 증가하는 범죄자들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하는 필연적인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이 범죄자들을 어디에 수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메이지 18년(1885년)에는 일본 전역에 8만 9천 명이 넘는 범죄자가 발생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을 그냥 풀어줄 수도 없었고, 감옥은 심각하게 부족해졌습니다. 새로운 감옥을 지어야 할 필요가 생겼고, 그 장소로 홋카이도가 선택되었습니다.

만약 이 박물관에 직접 방문해보실 계획이라면, 이번 기사가 여러분이 홋카이도에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또 다른 것들을 찾도록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왜 홋카이도에 감옥을 지었을까요?

당시의 홋카이도(당시에는 에미시)는 아직 개간되지 않은 불모지였습니다. 풍부한 광물자원을 가진 넓은 땅은 러시아 국경과도 인접해 있었습니다. 국방의 전략적인 측면에서는 홋카이도의 지리적 위치가 남다른 이점을 살려 시급한 발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이 넓은 땅을 개척하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메이지 정부는 광대한 영토를 개발하여 에미시에 감옥을 짓고, 그곳에 죄수들을 복역시키는 일석이조의 구상을 내놓았습니다. 이 계획으로 비용을 크게 절약하고, 재소자들이 석방된 후에도 에미시에 남아 현지 인구가 늘어나기를 희망했습니다. 이 계획에 따라 홋카이도의 바라토, 소라치, 구시로 교도소가 세워졌습니다.

메이지 23년(1890년)에 인구 630명도 안 되던 아바시리라는 작은 마을에 구시로 교도소의 아바시리 분소가 세워졌습니다. 재소자들은 에미시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육체적인 중노동을 하며 종신형을 살았습니다.

유난히 혹독하고 가혹했던 홋카이도의 개간 과정

재소자들의 첫 임무는 기타미와 아바시리를 연결하는 228km의 도로를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루에 4~5시간밖에 자지 못했고, 제공되는 음식은 빈약했습니다. 그리고 재소자들이 탈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명씩 쇠사슬로 묶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200명 이상의 재소자들이 영양실조, 불곰, 늑대와 같은 야생 동물에 의한 공격, 공사 중 사고 등 다양한 이유로 죽었습니다.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탈옥을 시도하던 죄수들이 그 자리에서 간수들에게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비인간적이고 가혹했던 환경은 결국 메이지 정부의 주목을 받게 되어 신속하게 해결되어, 메이지 27년(1894년)에는 이 계획이 폐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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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탈옥왕의 고향

아바시리 교도소가 유명해진 또 다른 이유는 '일본 탈옥왕' 시라토리 요시에가 한때 이곳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난과 불행 속에서 자란 그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10대부터 도박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26세 때 살인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11년 동안 아바시리 교도소를 포함한 여러 교도소에서 4차례나 탈옥했습니다. 이후 중년이 된 요시에는 모범수로 가석방되어, 출소 후에는 책까지 냈습니다. 시라토리는 72세의 나이로 도쿄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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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시리 감옥 박물관을 방문하여 역사를 살펴보세요

메이지 42년(1906년)에는 아바시리 교도소에서 단 하나의 감방만이 남았을 정도로 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메이지 45년(1909)에 현재의 방사형으로 재건되었습니다.

박물관에는 당시 감옥의 상황을 재현한 등신상들이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박물관에서 3㎞ 떨어진 새로운 아바시리 교도소에서 당시 재소자들에게 제공됐던 메뉴도 맛볼 수 있습니다.

아바시리 감옥 박물관은 홋카이도의 중요 문화재로서 재소자들의 힘든 고충과 홋카이도에 대한 공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재소자들의 삶, 현대 발전의 고된 작업, 처형에 관한 내용이 여기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바시리 감옥 박물관을 방문해 수십 년 전의 홋카이도 추위 속에서 재소자들이 긴 형기를 어떻게 복역했는지 자세히 살펴보세요.

(Thumbnail Credit: Osaze Cuomo/Shutterstock.com)

홋카이도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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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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