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인처럼 먹어 보기: 이치미와 시치미

현지인처럼 먹어 보기 위해서 여행자는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 중 제가 자주 시도하는 것은 식당 옆자리 현지인의 행동을 따라해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곁눈질로 옆 테이블의 현지인이 어떤 메뉴를 골라 어떻게 먹는지 기억해 두었다가 주문하거나, 음식을 드실 때 그 분의 행동을 따라해본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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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의 ‘조미료 사용 기술’

그 중에서도 제가 집중해서 보는 것은 현지인이 테이블에서 ‘어떤 조미료를 선택해 어떻게 매치하느냐’입니다. 이 ‘선택’이야말로 현지인만의 초특급 기술이라고 생각 하거든요. 테이블의 조미료는 대부분 이름도 쓰여있지 않고, 또 쓰여있다 해도 일본어를 못하시는 대부분의 여행객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지요. 오늘은 테이블에 놓인 대표적인 조미료들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또 무엇과 잘 어울리는 지 소개해드릴게요. 식초가 없는 냉면, 들깨가루가 없는 순댓국을 상상하면 이미 슬프잖아요. 일본 음식도 그럴 때가 있답니다. 다음 여행에는 현지인처럼 조미료를 자연스럽게 시도해봅시다.

이치미 vs. 시치미

일본의 식당에는 일반적으로 한국보다 더 많은 조미료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소금, 후추, 간장, 샐러드 드레싱류 등등. 이런 것들은 겉으로 보기만해도 무엇인지 알 수 있지만, 자주 보면서도 ‘고춧가루네’하고 지나쳤던 주목할 만한 조미료(향신료)로는 바로 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름과 미묘한 빨간 색의 차이 외에는 무엇이 다른지 잘 알 수 없지만 실은 이 둘은 맛도 향도 다를뿐더러 사용해야하는 음식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이치미 토가라시란

우선 간단한 이치미 토가라시 (一味唐からし, 이하 ‘이치미’) 부터 소개할게요. 이건 실물을 보신다면 바로 아시겠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고춧가루’입니다. 입자가 작은 ‘고운 고춧가루’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참고로 토가라시라는 말은 ‘고추’를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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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알아보자. 시치미란?

다음은 시치미 토가라시 (七味唐からし、이하 ‘시치미’)입니다. 고춧가루를 주재료로 검은깨, 참깨, 겨자씨, 대마씨, 산초, 진피(말린 귤껍질), 차초기잎, 김 등의 7가지 향신료를 섞어 만든 것으로 레시피에 따라 사용하는 재료는 다릅니다. 꼭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래요.

7가지를 섞는 이유는 맛의 밸런스도 중요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7’이라는 숫자가 좋은 기운을 갖고 있다고 믿어서래요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753’(7/5/3세 아동의 성장을 축하하는 일본 전통문화), 행운을 주는 것으로 믿는 ‘칠복신’ 도 있음). 자연스레 생기는 의문이지만, 하치미 토가라시(八味とからし,8가지 재료를 섞은 고춧가루)도 본 적이 있습니다.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해 위의 사진처럼 고치 유즈 토가라시 (高知産うず唐辛子、시코쿠 남부 고치현의 특산물 “유자”를 넣은 고춧가루), 도쿠시마산 스다치 시치미 (徳島産すだち七味, 시코쿠 동부에 위치한 도쿠시마의 스다치(초귤)을 활용한 시치미)를 만들기도 한답니다.

테이블 위에 간장과 작은 스푼이 꽂힌 종지 딱 둘만 놓여 있다면 그것은 시치미일 확률이 높을 정도로 대표적인 조미료에 해당합니다. 뚜껑을 열어 확인하시면 이치미와는 달리 여러 재료가 섞여 있기 때문에 다양한 색이 있음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간토지역에서는 ‘나나이로 토가라시(七色唐からし, 일곱 색깔의 고추)’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답니다.

이 시치미의 맛은 들어간 재료만큼이나 다양해서 달고, 맵고, 시고, 쓰고, 짜고, 떫고, 싱거운 맛이 있다고 하는데 그 밸런스가 좋기 때문에 한 가지 맛이 튀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여담이지만, 이러한 다양한 맛에 비유해 “人生の七味(인생의 시치미)”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うらみ、つらみ、ねたみ、そねみ、いやみ、ひがみ、やっかみ(원한, 괴로움, 질투, 시기, 짖궂음, 비뚤어짐, 시새움)」.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하늘을 보며 ‘人生,七味唐からし!‘라는 대사를 읊조리는 것을 본 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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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치미 떼다’라는 말이 설마?

또 여담이지만(여담 참 좋아함), 우리말의 “시치미 떼다”와 일본의 “시치미”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옛날 옛날에 매의 발목에 달았던 주인의 이름표를 ‘시치미’라고 했다고 합니다. 시치미를 뗀다는 건 주인의 이름표를 떼고 자기의 이름을 다는 경우를 의미해서, 지금의 ‘시치미 떼다’라는 의미로 이어진거죠. 

이치미와 시치미가 둘 다 있을 때는,

자, 그럼 이치미와 시치미가 함께 놓여 있다면, 언제 어떤 것을 써야할까요? 정해진 법칙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일본 현지인들은 가라아게, 카레, 채소볶음 등에는 이치미를 쓰고, 우동/소바, 야키토리, 돼지고기 된장국(돈지루), 규동, 절임채소류 등에는 시치미를 쓴다고 합니다. 이치미의 매운 맛이 시치미보다 강한 편이기 때문에 ‘심플하게 매운맛을 더하고 싶을 때’는 이치미, ‘풍부한 향미와 함께 적당한 정도의 매운 맛을 더하고 싶을 때’는 시치미를 넣는다고 하네요.

참고가 되셨나요? 다음 여행에는 테이블 위에 놓인 조미료를 허투루 보지 맙시다. 참, 이치미와 시치미는 일본 대부분의 슈퍼나 편의점에서 살 수 있답니다. 새로운 맛에의 도전을 두려워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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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프로필

SURU
SURU
세상의 모든 먹을 것과 그것을 둘러싼 공기에 대해 글을 씁니다. 광고회사를 잘 다니다 시원하게 때려 치고, 일본으로 가 오사카 츠지 조리사 학교 조리사 본과를 졸업했습니다. 지금은 외식회사에서 메뉴 기획자로 일하며 덕업일치의 최전선에 서있습니다. 특기는 이자카야 일본어.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글 : SURU (인스타그램 @lively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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